‘순이’는 한국에서 (한국) 여성을 지칭하는 대명사로, 지금도 여전히 ‘○순이’와 같이 농담처럼 쓰이고 있다. 하지만 사실 이 ‘순할 순(順)’이라는 한자는 지아비와 집안을 잘 따르는 순한 여자가 되기를 바라는 의미로 붙여지던 것이었다. 약 한 세기 뒤, 한국 사회는 미투운동으로 촉발된 페미니즘의 거대한 물결을 맞고 있다. 이는 어쩌면 “우리는 더 이상 순이가 아니다”라는 선언일지도 모른다. 100여 년 동안 무엇이 바뀌고 무엇이 여전히 바뀌지 않았을까? 이 사이에 한국 여성들은 어떠한 삶을 살아왔을까? 이 책은 이 땅의 수많은 ‘순이’, 그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세 ‘순이’의 전성시대를 복원, 조명한다. 그들의 삶은 감춰지고 잊힌 또 다른 한국 현대사이며, 바로 지금도 매일 분투하고 있는 한국 여성의 선배들 이야기다. 그 이름에서 드러나듯, 가부장적 관념이 강한 한국 사회에서 여성과 여성노동자의 삶은 녹록지 않았다. 화려한 경제 개발의 그늘에서 그들은 인권 유린과 매연, 어둠침침한 조명 아래 살인적인 강도의 노동을 겪으며 청춘기를 보냈다. 하지만 그 안에는 엄청나게 질긴 생명력이 흐르고 있었다. 그것은 헤게모니 쟁탈을 좇는 욕망이 아니라 입에 풀칠하기 위한 처절함이었고, 타인을 위해 조각조각 부서지는 희생을 기꺼이 무릅쓴 숭고함이었다. 기자 출신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방대한 자료 조사를 바탕으로, 시공간을 초월해 살아 펄떡이는 르포르타주를 완성했다. 당시의 신문기사나 칼럼, 문학작품, 사진 등을 풍부하게 인용·수록하고, 저자가 직접 수소문하여 인터뷰한 이 책의 주인공 9명의 이야기로 더욱 완성도를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