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승윤 산문집. 정승윤의 수필은 읽기가 편하지 않다. 수필의 일반적 경향과는 차이를 보인다. 길이가 짧다는 외형만을 두고 하는 말은 아니다. 창작의 기본 방법이 다르다. 방법이 다르다는 것은 문학관이 다르다는 뜻이다. 정승윤은 문학이나 수필에 관해 자신의 관점을 밝히는 글을 거의 쓰지 않은 듯하다. 이번 첫 수필집의 '작가의 말'에서 그 일말이 암시되고 있으나 그리 구체적이지 못하다. 하지만 자신의 관점을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그것을 더욱 확고하게 드러낸다. 즉, 그의 작품 전체가 그것을 말해준다. 정승윤이 기존 창작방법을 수용하지 않는다는 점은 수필이 무엇인지를 깊이 성찰하고 고민했다는 증거다. 그 고민은 자기만의 수필관이나 창작방법을 탐색하고 실천하는 동력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여기에는 기존 수필 문법에 대한 비판과 저항이 깔려 있다. 그 비판과 저항에는 전통을 전복하는 것은 아닐지라도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지 않는 창작은 창조적일 수 없다는 신념이 전제되었다. 수필이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묻지 않고는 이러한 신념이 결실을 보기 어렵다. 그는 어떤 수필가보다도 수필에 대한 강한 자의식을 가지고 창작에 임하는 작가다.